현대를 사는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18개월 차이 나는 두 살 네 살, 두 아이의 뒤치닥 거리에 지쳐, 하루하루를 나라는 존재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조차도 잊고 살아갈 즈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음은, 그저 메마른 내 일상을 촉촉이 적셔줄 수 있는, 단비 같은 은혜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주 두 주 공부를 하면서, 목장모임의 중요성과 세상 모든 게 그렇듯이, 신앙생활 또한 ‘생각만해서는 되지 않는다. 실행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라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 공부를 진행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아이들을 맡기면서 수업에 참여하고, 교재를 읽어서 숙제를 해야 하는 것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숙제를 제출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화요일은 왜 그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참여하던 중, 

 

새로운 삶의 클라이막스라는 ‘견고한 진’에 대해 다루는 시간이 오게 되었고, 내가 몰랐던 내 안에 가라 앉아있던 나의 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비유가 딱 맞았습니다. 

꾸정물 아시지요? 꾸정물을 한 3,4일을 놔두면 물이 말갛습니다. 그러나 저으면 꾸정물이 확 일어납니다.

 

“이렇듯이 가만 놔둘 때는 괜찮은데, 휘저으면 내 안에 깊숙이 깔려 있던 지날 날의 죄악들을 수면위로 올라오게 만든...“. 아주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3주 정도를 머릿속에 맴도는 그런 유쾌하지 않은 생각들로 보내려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차라리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묻어두고 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죄를 알게 되어 불편한 마음이든 것 역시, 성령님의 터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그 죄들을 고백하고 사함 받아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바쁜 부모님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고 외로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때 그 아이가 너무도 안쓰러워 기도하며 울었을 때, 성령님도 같이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주시는 선물이라 하였지요. 엄마가 되어서 삶 공부를 하니 예수님의 마음이 더 마음깊이 닿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내 아이가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아 울고 슬퍼하면, 나는 그 몇 배로 가슴이 아플 것 같으니까요. 성령님도 그 마음 이시겠지요.

 

이번 삶 공부를 통하여서 새로운 결심이서거나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대해 더 배우고, 크리스챤으로서 바르게 나아갈 길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내 안의 견고한 진이 후련하게 털어진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삶 공부를 통하여 내 몸에 겹겹이 쌓여있는 수많은 죄의 비늘들을 이제 한 꺼풀 벗겨낸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한걸음 다가간 것이겠지요. 제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런 그림 아시지요? “언덕을 향해 뻗어 있는 한 줄의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작은 사람의 뒷모습.” 

 

저는 계속 그 길을 걸어야 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그길 끝에 계신 게 아니라, 나의 뒤에서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시고, 내가 넘어지면 달려와 일으켜주시며, 내 무릎과 손을 털어주시며 괜찮다 라고 말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내 아이한테 그러는 것처럼... 그런 하나님이 내 아버지여서 참 좋습니다.

 

끝으로 여러 고비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늘까지 무사히 오게 해주신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매주 새로운 말씀을 가르쳐 주신 목사님과 우리 효주 혁주돌봐주시고 밥먹여주시고, 추운데 집에까지 데려다 주시느라 애쓰신 목자.목녀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삶 공부 간증을 기약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